하지만 모든 것이 필리프 4세의 뜻대로 되지는 않았다.
프랑스 이외 국가에서는 템플기사단에 대한 탄압이 약했기 때문에 나머지 단원들이 모두 독일기사단과
요한기사단(병원기사단, 중세 서유럽의 3대 종교기사단 중 하나로, 11세기 중엽 병상자를 보살피는 구호단으로
시작하여 십자군전쟁 때 의료 활동을 한 전투적인 종교기사단)으로 이적한 것이다.
그리고 포르투갈의 템플기사단은 명칭을 그리스도기사단으로 바꾸고, 대 항해시대에 선단과 함대를 조직해 활약했다.
프리메이슨은 그 기사단 중 일부가 스코틀랜드로 피신한 뒤, 그곳에서 석공으로 일하며 비밀리에 조직한 단체로 추측된다.
탬플기사단은 조직의 본래 목적과는 거리가 먼 솔로몬 신전의 발굴 작업에 깊이 관여했다는 일화가 남아있다.
신전 터에 있는 막대한 양의 보물과 마법, 주술 서적 등을 찿아낼 속셈이었다는 것이다.
솔로몬 신전을 설계한 건축가 히람 아비프가 프리메이슨의 멤버였다는 사실이 이러한 내용을 뒷바침한다.
또한 1808년에는 프리메이슨의 회원들이 템플기사단 대총장인 자크 드 몰레의 위령제를 주관했다.
더욱이 회원의 지위를 나타내는 계위도 템플기사단의 체계와 비슷하고, 입회 의식이나 절차에도 기사단의 사상이
짙게 반영되어 있다고 한다.
그러나 프리메이슨과 템플기사단과의 관계는 여전히 수수께끼이다.